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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대공의 방을 나온 뒤 리넬과 함께 벨로스를 만나러 갔다.

노크하려고 손을 올리려다 방문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걸 보고는 멈칫했다.

벨로스의 방문은 리넬이 주먹으로 뚫어 놓은 그대로 방치된 채였다.

“아직 문을 교체하지 않았나 봐요.”

“이대로도 괜찮은가 보지, 뭐.”

그는 태연하게 말하며 자신이 스타토토사이트 놓은 방문에 얼굴을 쏙 들이밀며 외쳤다.

“마탑주, 좀 들어가겠네!”

방 안에서는 ‘어쩐 일이십니까?’라고 묻는 벨로스의 탐탁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있게. 몸도 시원치 않은데 굳이 나올 거 없어.”

리넬이 이번엔 구멍 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직접 잠근 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아니, 이렇게 막 들어오시면……!”

짜증 난 티를 팍팍 내며 걸어 나오던 벨로스가 멈춰 섰다.

벨로스는 그의 뒤에서 몰래 손을 흔드는 나를 발견하더니 단숨에 말을 바꿨다.

“……환영합니다.”

‘막 들어오시면 환영’이라는 롤토토사이트 이상한 말에 웃음이 났다.

나를 보고 중간에 말을 바꾼 티가 역력한 벨로스를 보며 뒷짐을 지고 있던 리넬이 주먹을 쥐었다.

나는 얼른 그의 주먹 쥔 손을 내 손으로 덮으며 힘을 빼라는 뜻으로 손등을 토닥였다.

“보호 마법이 좋긴 좋군. 조금 붓기만 한 걸 보니.”

그의 말처럼 벨로스의 얼굴 상태는 생각보다 양호한 편이었다.

“다행이에요. 걱정했는데.”

위로가 담긴 내 말에 뚱한 표정이던 벨로스가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젤다 님께서 연고를 듬뿍 발라 주신 덕분입니다.”

“내가 힘을 덜 준 덕이기도 하고.”

그가 혼잣말로 조용히 구시렁거렸다.

내가 그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자 그가 방문을 돌아보며 말했다.

“문은, 되도록 빨리 교체해 놓으라고 관리부에 직접 지시해 놓겠네.”

그는 내 손을 잡고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많이 불편하시죠?”

나는 소파에 앉으며 벨로스에게 물었다.

“나름 살만합니다. 궁인들이 오다가다 구멍으로 인사를 건네 오기도 하고요……. 근데 어쩐 일이십니까?”

벨로스도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롤베팅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모이야랑 모니가 사고를 좀 치고 왔어요.”

“죽음의 협곡에서요?”

“아니요, 와이번들하고 함께 놀다가 무리에서 이탈해 아클라토 공국까지 갔었나 봐요. 그런데 공국의 성벽에 있는 첨탑 감옥에서 갈라코들이 갇혀 있는 걸 봤대요.”

“아…… 헤토르 그자가 공국에도 갈라코를 가져다 놓고 관리하고 있나 보군요. 그런데 두 녀석이 무슨 사고를……?”

벨로스의 얼굴에 불안해하는 기색이 스쳤다.

“둘이서 품종 개량을 시켜 놓고 왔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대가리가 두 개인 수컷 갈라코들을 죄다 대가리 하나로 만들어 놓고 온 모양이야.”

심각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시 생각해도 녀석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나 역시 헛웃음이 났다.

“정말입니까?”

벨로스는 어리둥절해 하며 미간을 좁혔다.

“네, 사실이에요.”

내 말을 받아 리넬이 설명을 덧붙였다.

“철장 안에 암컷 갈라코가 있었는데, 머리가 롤배팅 개인 수컷 갈라코가 서로 싸우는 걸 보고 평화를 위해서 그랬다는군.”

“……하, 하하.”

벨로스도 실소를 터트렸다.

“곧 헤토르 그자의 귀에 들어갈 텐데, 괜찮을까요?”

내가 조금 걱정스러운 투로 묻자 벨로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불로 갈라코의 대가리를 태워버릴 수 있는 건 와이번들밖에 없으니 이 일이 와이번의 소행이라는 건 바로 알겠죠. 그래도 모이야와 모니의 존재는 모르니까 너무 염려 마십시오.”

“짐의 생각도 그래. 와이번 로드를 내세워 라피온 황실이 움직였다며 오해를 살 수는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어. 그러니 저들도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을 거야. 경계 태세를 갖추는 것 말고는.”

“예, 폐하. 와이번들을 쉽게 공격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벨로스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오히려 잘됐다며 말을 이어갔다.

“나중에 혹시라도 록사나 측에서 갈라코들을 스타베팅 공격할 일이 있다면 그 수컷 갈라코들은 죽이기가 수월하겠군요.”

“그러게요. 갈라코는 대가리 두 개를 모두 제거해야 죽는데, 모이야랑 모니 덕에 한 방에 죽일 수 있겠어요.”

나는 엘란지 숲에서 갈라코들의 습격을 받았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사실 마법주 자네를 찾아온 건 갈라코 대가리 때문이 아니라, 헤토르 그자에 대해 물어볼 게 있어서 왔네.”

“예, 폐하.”

“헤토르가 왜 록사나를 돕고 있는지 알고 있나? 큰 약점을 잡히지 않은 이상, 록사나의 호위 기사를 자처하면서 이곳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는 거 같은데? 내 느낌엔 록사나를 그다지 마음에 깊이 품고 있는 것도 아닌 거 같고.”

리넬의 물음에 벨로스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저도 처음엔 그자가 황후가 된 록사나를 사모하는 마음에 그녀의 뒤를 봐주고 있는 거로 생각했습니다만…….”

“그런데?”

“그런데, 언젠가 그가 저를 찾아와 롤드컵토토 포션에 관해 묻더군요.”

벨로스의 말에 리넬과 내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혹시 록사나가 헤토르에게 복종 포션을 먹였을 가능성은…….”

“없진 않습니다. 흠, 제가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어떻게.”

“복종 포션 반응 검사를 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 간단하게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은 마탑에 다녀오겠습니다…….”

벨로스가 뭔가 짐작이 가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차를 좀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노튼 황자가 로지의 처소를 찾았다.

“그럼요, 어서 오세요.”

저 자신도 내어 드릴 수 있는걸요.

로지가 상냥하게 노튼 황자를 맞이하며 본심을 숨겼다.

티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로지가 체리 차를 따라주며 넌지시 멜라니와 헤토르의 사이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맙소사. 폐하께서도…… 아시는 일입니까?”

노튼 황자는 한 모금 마신 체리 차를 도로 찻잔에 주르륵 흘릴 뻔했다.

“아마도요. 젤다 마마께서 폐하께 살짝 언질을 주지 않으셨을까요? 그리고 애초에 헤토르 그자를 멜라니 마마의 호위 기사로 붙여 주신 분이 폐하시니까 두 사람 사이를 듣고 크게 놀라진 않으실 거예요.”

“멜라니 마마께선 그 해적왕이 왜 좋다고 하던가요?”

노튼 황자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생긴 것처럼 성격도 남자답대요.”

그녀의 말투에는 언뜻 부러움이 묻어 있었다.

“키스를 어찌나 거칠게 하던지 멜라니 마마의 심장이 입 밖으로 뽑혀져 나올 거 같다지 뭐예요?”

로지가 목청을 높이며 말했다.

감탄의 표현이었지만, 노튼 황자는 다르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저런.”

노튼 황자가 쯧쯧 혀를 차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로지가 답답하다는 듯 얼른 말을 덧붙였다.

“……멜라니 마마는 좋았다는 의미로 말한 거였어요.”

“혹시, 멜라니 마마가 부러우신 겁니까?”

노튼 황자가 두 팔을 테이블 위로 얹으며 로지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로지의 입에선 거짓말이 나오지 않았다.

“부러운 건 아니고…… 그냥, 그냥 궁금한 거죠.”

거친 키스란 어떤 건지.

“결혼 후에 그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노튼 황자가 부드러운 미소로 로지의 욕망을 눌러 놓았다.

‘나는 지금 궁금하단 말이에요!’

로지는 애써 실망감을 감추며 말을 돌렸다.

“아, 황자님은 수영 잘하세요?”

“수영은 갑자기 왜요?”

“헤토르가 멜라니 마마께 수영도 가르쳐 줬대요. 파트샤 제국까지 바닷길을 이동하니까 배워두면 좋다고.”

“그거야 배로 이동하는 거지, 헤엄쳐서 가는 것도 아닌데 수영을 왜……?”

노튼 황자가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글쎄요? 하지만 뭐, 배워둬서 나쁠 건 없잖아요.”

“그렇긴 합니다.”

“저도 멜라니 마마처럼 수영을 못 하는데 걱정이에요…….”

로지가 노튼 황자를 슬쩍 떠보며 말하자,

“저도요.”

노튼 황자도 덩달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네.”

로지가 고개를 돌려 체리 차를 마시다가 몰래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따라 노튼 황자의 얼굴이 여린 소년 같았다.

***

늦은 오후, 헤토르는 아드리안 황제를 만나기 롤토토 귀빈들이 머무는 별궁에 도착했다.

미리 기별해놓아서인지 아드리안 황제는 기다렸다는 듯 헤토르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대륙 사냥 대회 때 수도원에서 보고 지금에서야 대화를 나누는 거 같군. 앉지.”

“황후 폐하께 말씀 들었습니다. 갈라코가 필요하시다고요. 어떤 계획이신지 정확히 알고 싶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헤토르는 자리에 앉자마자 인사치레 없이 곧바로 본론부터 들어갔다.

“당연히 알아야지. 갈라코를 관리하는 사람이 자네니까.”

아드리안 황제가 헤토르에게 호의를 내비치며 말했다.

“자네는 황후 폐하의 측근이니 와이번 로드가 누군지 황후께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

“예, 들었습니다.”

“남 대륙 나라들에 와이번 로드가 라피온 제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놓았지만, 나와 뜻을 같이할지 말지 아직 확실치 않네. 와이번 로드가 리넬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젤다 마마라는 걸 알면, 다른 나라들이 몸을 사릴 수도 있어.”

“아무래도 그렇겠죠. 리넬 황제가 가만히 있진 않을 테니.”

자칫하면 또다시 대륙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았다.

“해서, 파트샤 제국에 도착하기 전에 저들을 한번 흔들어 놓는 게 필요해.”

“갈라코를 이용해서 말입니까?”

“그렇지. 굶주린 갈라코들이 라피온 제국의 축하 사절단 절반만이라도 없애준다면 사절단을 파트샤 제국에서 충분히 고립시켜 놓을 수 있어.”

말하는 중간중간 아드리안 황제의 비열한 웃음이 잇새로 새어 나왔다.

“바다 위에서 공격을 받는다면 다시 배를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파트샤 제국과 가까워지는 위치에서, 갈라코를 풀어놓아야겠지.”

아드리안 황제가 은밀히 속삭이며 야비한 눈빛을 번뜩였다.

“와이번 로드뿐만 아니라, 라피온 제국의 주요 인물들을 한꺼번에 없앨 기회야. 눈엣가시들이 사라지면, 황후 폐하의 입지가 더 단단해지겠지. 그러면 자네의 위상도 함께 높아질 테고.”

아드리안 황제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면 마치 큰 이득을 보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게 내게 무슨 의미지?’

헤토르가 스스로 반문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 록사나를 돕는 스타토토 인생의 전부였었다.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자신이 왜 그녀에게 헌신하는지 점점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다.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려 있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뭔지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록사나를 보면 그녀의 명령에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이 자아를 갖게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헤토르는 아클라토 공국을 떠나오기 전의 록사나에 대한 감정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뇌의 일부가 무언가에 삭제당하고 조작돼 버린 것 같았다.

처음 록사나에게 이 계획을 들었을 땐, 당연하게 그녀의 명령을 따라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갈라코를 풀어 놓으면 분명 배 안의 많은 사람이 갈라코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 희생자가 멜라니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신의 몸속에서 두 개의 자아가 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황후께 듣기론 대륙 사냥 대회 때 풀어 놓았다가 다시 잡아들인 갈라코들은 아클라토 공국에서 관리하고 있다지?”

“예, 대륙과 훨씬 가까워서 탄야 섬보다는 관리하기가 더 수월합니다.”

“잘됐군, 아주 완벽해. 헤토르, 이번 일만 잘되면…… 혹시 아나? 자네가 라피온 제국의 황제가 될지도.”

아드리안 황제는 와이번 로드인 젤다 외에도 가능하다면 리넬까지 제거할 생각인 듯했다.

“갈라코를 미리 준비해 두게. 최대한 굶주려 놓은 상태로.”

아드리안 황제의 다시 한번 당부하듯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손가락 하나를 자신의 입에 대더니 열린 테라스 문을 눈짓했다.

헤토르는 아드리안 황제의 눈짓에 테라스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테라스 문 너머로 그림자가 살짝 비췄다.

누군가 대화를 엿듣는 중이었다.

아드리안 황제가 입 모양으로 ‘나가 보게’라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일어서더니 일부러 갈라코에 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해댔다.

헤토르는 장단을 맞춰주며 몇 마디 대꾸해 주다가 묵례를 하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아드리안 황제는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열린 테라스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떤 쥐새끼가 엿듣고 있나 했더니, 내가 키우는 개였구나.”

“저, 저는 그저…… 누군가 오신 거 같아…….”

테라스 문밖에는 아드리안 황제의 옆방에 묵고 있는 엘란 황비가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엘란, 언제부터 우리가 테라스를 통해 방을 넘나드는 사이였지?”

“커헉! 폐…… 폐하!”

아드리안 황제는 놀란 엘란 황비의 목을 움켜쥔 채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

벨로스의 방을 나와 젤다를 배웅하고 나서 다시 집무실로 돌아온 리넬은 스티안을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마탑주 방문, 오늘 당장 교체해 주도록 해.”

“어제는 분명…… 며칠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스티안의 말에 옆에 서 있던 라파엘이 경악했다.

“폐하, 정말 그리 명령하셨습니까?!”

“……그랬다, 왜. 감시 차원에서.”

리넬이 잠시 머쓱한 표정을 짓다가 떨떠름한 투로 말했다.

“근데…… 왜 다시 마음이 바뀌셨을까요?”

라파엘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마탑주가 감기 걸리면 곤란해서.”

“예?”

“밤바람이 춥더라.”

“예에?”

“가을이잖아.”

“……아니, 어제는 마탑주 님의 얼굴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작정으로 때려 놓으시고는 별안간 감기 걱정은 왜 하시는 걸까요?”

라파엘이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비꼬듯 말했다.

“마탑주가 매일 젤다의 상태를 살피고 있는데, 감기에 걸려버리면 젤다한테 옮을 수 있잖아. 그러면 우리 아이한테도 안 좋을 거고.”

“아아, 그렇게 깊은 뜻이?”

라파엘과 스티안이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까 구멍을 막아 놓든지, 문을 아예 교체하든지. 오늘 중으로 조치해 놓으라고.”

“예, 폐하. 지금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똑똑똑-.

잽싸게 집무실 문을 나갔던 스티안이 몇 초 후, 다시 들어왔다.

“저…… 폐하.”

“뭐야, 또.”

“멜라니 마마의 호위 기사가 알현을 청해 왔습니다.”

스티안의 말에 서류를 들춰보던 리넬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 헤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