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소환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채 대표는 우진이 임시 총회 소집 청구서를 보내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안건이 뭐래.”

“대표님을 해임하겠답니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채 대표가 비서실장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내용 증명을 쓱 훑었다.

“감히 누가 누굴 해임해.”

그의 입에서 담배 연기와 실소가 뒤섞여 나왔다.

“우리 쪽 지분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고 이러는 거야? 이 자식, 공부만 해서 그런지 대가리가 꽃밭이네.”

“어떻게 할까요?”

“주총 소집해 줘.”

“……네?”

“우리 주주님께서 원하신다는데 들어 드려야지.”

“괜찮을까요?”

“안 괜찮을 게 뭐야.”

“지금 상황이…….”

비서실장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국세청 세무 조사와 검찰 수사 그리고 딸의 경찰 조사까지 거의 동시에 시작된 마당에 안 괜찮을 게 뭐냐니.

며칠 내리 줄담배를 태우더니만 과도한 니코틴으로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비서실장의 걱정과 달리, 채 대표에게도 꿍꿍이속이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잠잠하잖아. 세무 조사나 검찰 수사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더 시끄러워질 텐데 그 전에 빨리 해치워 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정면 돌파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는 해임안이 압도적으로 부결되면 우진이 다시는 헛짓거리를 하려 들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달걀로 바위 치기가 뭔지 보여 줄 생각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채 대표가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보고 집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채승은 임시 주주 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를 확정하기 위한 주주 명부 폐쇄 기준일을 공시했다.

***

그날 밤, 성혁은 잠자리에 들기 전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옆에 모로 누워 있던 영인이 일어나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 동그란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잠시 바르작거리던 움직임이 멎었다.

-국세청, 검찰, 임시 주총까지 꽤 바빴겠구나.

“더 바쁠 방법이 없을까 궁리 중입니다.”

-그 정도면 됐다. 넌 이제 결혼 준비나 해라.

“물론 결혼 준비도 잘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웨딩 플래너 덕분에 결혼 준비는 아주 순조로웠다. 보라고 하면 보고, 입으라고 하면 입고, 고르라고 하면 고르고, 아주 편했다. 살면서 가장 수동적인 시기가 아닐까 싶었다.

제 아내가 될 여자도 원래 쇼핑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라 함께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분고분 따르는 중이었다. 부부 일심동체의 표본이라고 자부했다.

-알았다.

뚝.

부자의 통화는 30초를 넘기는 법이 거의 없었다.

성혁은 휴대 전화를 협탁 위에 다시 올려두고 영인의 목 아래에 팔을 넣어 팔베개를 해 주었다. 영인이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고 그와 눈을 맞췄다.

“아버님 말씀대로 그 정도면 됐어요. 더 바빠지면 나 삐질 거예요.”

영인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었다.

가슴이 뻐근할 만큼 그에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가 이 이상 이 일에 시간이든 감정이든 뭐든 쏟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도 불쑥불쑥 그 사람들은 내가 왜 그렇게 싫었을까,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억울하고 서러웠다. 앞으로도 아주 오래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제가 감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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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이 칭찬하듯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성혁이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고집 안 부렸으니까 상 줘야지.”

“무슨 상을 줄까요?”

영인은 그가 원하는 게 뭔지 눈치챘으면서도 모른 척 두 눈을 깜빡거렸다.